★내 약 사용설명서
[천연비타민제의 늪] 천연비타민이란 말에 속을 것인가?
이지현 약사 | 2016. 6. 15. 13:01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천연’ 비타민제만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약사들은 ‘또 어떤 회사가 장난을 치고 있네’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만다. 약의 허가 제도나 화학 성분의 구조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인들을 속여먹기 쉬운 말이 바로 ‘천연’이기 때문이다. 비타민제를 만드는 회사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화학 물질을 함유한 제품들이 암을 일으킨다는 뻔한 말로 겁을 준다.
각종 TV 매체며 블로그들에서 ‘천연 재료’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대부분은 ‘광고’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읽기에도 정말 그럴 듯한 연구 결과까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실험실 데이터나 논문은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격으로 찾아서 끼워 맞추기가 너무 쉽기 때문에 업체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한 논문을 찾기란 식은 죽 먹기다.
사람들은 ‘천연비타민’을 어떻게 만든다고 생각할까? 과일이나 채소를 따서 녹즙기에 갈아 먹듯 그렇게 간단히 알약으로 만들어낸다고 믿는 듯 하다. 정말 원료를 천연에서 추출했다고 해도 추출 과정에서 수 많은 화학 처리가 들어가고 그걸 다시 알약으로 빚기까지는 공정상 화학 물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물질까지도 모두 천연물을 썼다고 하겠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실제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비타민 중에는 진정한 ‘천연비타민’이라 할 수 있는 제품이 없다고 식약처 대변인이 전하기도 했다. 천연이라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는 인공, 합성, 합성보존료 등이 전혀 첨가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상태의 제품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천연 원료’라는 표기를 달고 교묘히 천연비타민으로 광고하는 제품 또한 합성 비타민을 혼합한 경우도 많으며 천연에서 추출한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앞서 말했듯이 정제 등 약의 제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첨가제를 섞어 만들어 엄밀히 말하자면 ‘천연‘은 아닌 것이다.
화학적 합성으로 만든 비타민은 생체에 들어가면 이용이 잘 안되고 암을 일으킨다는 논리로 접근을 할 거면 그 수많은 약들은 어떻게 잘도 쓰이고 있을까?
천연 비타민을 선전하는 포스팅에서는 합성 비타민에 들어간 첨가제가 이만큼이나 위험하다고 말하기 위해 과량의 첨가제 성분이 독성을 나타내는 실험을 이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이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굉장한 독성물질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이 성분은 약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성분이다.
약의 주성분을 넣어 알약을 만드는 공정을 녹차 수제비를 만드는 것에 비유해 보자. 밀가루에 녹차 분말을 넣고 골고루 비벼서 새알처럼 빚은 수제비 한알당 일정한 녹차 가루가 함유되게 하려면 가루 입자들이 미끄럽게 잘 섞이도록 만드는 부형제가 필요하다. 그것이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이란 성분의 역할인데 이 성분은 ‘안전한 부형제’로 FDA 승인을 받아 약을 만드는 공정에 매우 오랜 시간 문제 없이 쓰여온 성분이다.
그런데 이 성분을 두고 몸에 해롭다고 하니 소량 첨가된 부형제 때문에 약이 독하고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억지다. 실제 실험 결과를 들면서 이 부형제 성분이 위험하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는데 쓰인 양을 보면 약을 한 번에 몇 백알씩 먹어도 부족한 정도의 많은 양을 먹이고 실험한 결과다. 이런 식으로 공포감을 조장해서 원래부터 안전하게 쓰이고 있던 부형제들을 호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골고루 잘 섞이게 만드는 부형제가 없이 만들었다면 그럼 한알당 유효 성분이 일정하게 잘 함유되어 있단 보장도 없지 않은가? 부형제가 없다는 것을 반드시 좋게 해석할 일은 아니다. 일부 제품은 부형제가 없이 만드느라 가루 형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분말의 경우 특히 습기에 의해 변질되기 쉬우므로 건조제를 첨가해야 한다.
최근에는 천연 엽산을 또 다시 유행시키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서 대장암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파스타 면, 밀가루 등의 식재료에 전부 엽산을 첨가한 이후로 암 발생률이 더 증가했다는 자료를 인용하며 그 엽산이 합성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렇지만 실제 이에 대해서 CDC (미국 질병 관리 본부)에서는 엽산 섭취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대장암 조기 검진을 권고하다 보니 검진을 통해 모르고 있던 암을 발견한 경우가 급증했기 때문이라 해석하였다. 이미 암이 걸린 환자의 경우 엽산이 암세포를 건강하게 만들어 암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했으나 건강한 사람이 엽산을 적당히 섭취한다고 해서 암이 발생하진 않는다고도 결론 내렸다.
또한, 엽산의 경우에는 음식물에서 섭취할 경우 흡수율이 약 50%정도인 반면 합성 엽산제를 섭취할 경우 흡수율은 약 100%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엔 산하 기구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와 미국식품의약국 FDA, 세계 보건기구 WHO에서는 임신 준비, 심혈관계 질환 등의 이유로 엽산의 요구량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흡수가 잘 되는 합성 엽산제를 먹으라고 추천한다. 우리나라 복지부 산하 임산부약물센터에서 또한 합성 엽산 복용을 권장한다.
비타민D 또한 천연, 합성 비타민 사이에 흡수율의 차이가 미미한 대표적인 비타민으로 천연 제품이 훨씬 더 몸에서 잘 쓰인다는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비타민C는 천연 성분이 약 1.3배 흡수율이 높고 각종 플라보노이드(과일이나 야채의 색깔을 나타내는 성분)를 함유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가격 차이를 감수하면서까지 먹어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합성 비타민C는 석유에서 만들고 합성 엽산은 개구리 껍질로 만든다는 등의 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과연 ‘과학이 발달한 정보의 시대’가 맞나 싶을만큼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정확히 말해 합성 비타민C는 옥수수 전분을 박테리아로 발효해 만든 ‘아스코르빈산’인데 그리 치면 이 합성 비타민C 또한 ‘천연 원료’라는 말을 써도 무방하지 않은가? 근거 없는 비방 자체가 소비자들을 ‘공포 마케팅’으로 우롱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좋은 원료의 제품을 고가를 주고 사서 먹겠다는 생각에 반기를 들고 싶지는 않다. 천연 재료에서 추출하는 비타민의 경우 원료가 되는 소재를 대량 확보해야 하고, 추출과 정제공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고 쉽게 산화될 수 있으므로 보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그런 비용과 수고로움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느냐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혹시 나는 ‘공포 마케팅’에 휘둘려 너무 쉽게 지갑을 여는 것은 아닐까? 천연비타민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좋은 천연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은 맞을까? 또 굳이 내가 천연비타민을 복용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신뢰할 수 있는’ 약사에게 한번쯤 물어보는 것이 좋지 않나.
우리가 섭취하는 천연의 물질들은 대단한 가치가 있음에는 분명하다. 천연에 존재하는 굉장히 다양한 물질들을 추출하고 규명해가면서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신약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천연물은 정말 보물 창고라 할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천연물을 약으로 개발할 때는 여러 가지 공정을 거쳐 ‘핵심적인 화학 성분’을 뽑아낸다. 그 핵심 성분에 대해 다시 약효가 나타날 만큼의 양이 얼마 만큼인지, 부작용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야 흡수가 되는지 등등을 굉장히 오랜 시간 연구하고 약으로 가치가 있는지 검토한다. 이런 검토를 거친 다음 대량 생산을 위해 화학적으로 합성해 동일 성분을 만들어내고 약으로 널리 활용한다.
우리가 이미 오랜 시간 사용해왔고 작용을 잘 알고 있는 비타민, 미네랄 성분들은 굳이 천연에서 뽑지 않아도 안전하게 합성해서 약으로 만들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해 천연에서 추출한 비타민과 합성으로 제조한 비타민은 화학 구조가 같은 물질이므로 반드시 천연이어야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또한, 정제되지 않은 천연물질을 그대로 섭취하고 바른다고 해서 약이 되는 성분이 몸에 잘 흡수되어 제대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천연이라는 달콤한 말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타민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원료’보다 ‘목적’이 되어야 한다. 내가 어떤 목적으로 비타민제를 섭취하려 하는지 꼭 생각해보자. 영양 공급, 질병 치료 보조, 피로 회복 등의 다양한 목적에 합당한 성분의 비타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약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선택해야 한다.
좋은약은 무엇일까요?
약사에게 물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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